AI시대에 책이요?
AI 시대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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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닿는 경로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책에서 검색으로, 검색에서 다시 AI 챗봇으로. 단계가 바뀔 때마다 정보를 얻는 일은 더 쉬워졌어요. 그러나 정보에 쉽게 닿는 것과 더 넓은 세계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AI로 하는 공부는 우리의 인식을 넓혀주는 동시에 더 은밀하게 좁힐 수도 있어요. 그 좁힘이 어디서 비롯되고 어디서 비롯되지 않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 결과를 가르는지 하나씩 나누어 살펴보려 합니다.
질문의 방향성은 핵심이 아니다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은 질문 그 자체입니다. AI에게 묻는 행위는 어떤 정보를 향한 방향을 전제하죠. "왜 X가 좋은가?"라는 질문에는 이미 X가 좋다는 판단이 깔려 있어요. 질문하는 주체는 언제나 사용자이니, 사용자가 주도하는 테두리 안에서는 같은 방향의 정보만 마주하게 된다는 우려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필터 버블과 닮았지만, 버블을 만드는 것이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용자 자신의 질문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 진단은 가장 눈에 띄는 만큼 가장 약합니다. 모든 질문에 전제가 깔린다는 말은 옳지만, 질문의 방향성과 답변의 일방성은 같지 않아요. 방향을 가진 질문에도 좋은 답변은 "X는 논쟁적이며 반대 근거는 이렇습니다"라며 틀을 흔들 수 있습니다. 개별 질문의 편향은 답변 단계에서 얼마든지 교정될 여지가 있어요. 방향성만으로 사람이 갇히지는 않습니다.
진짜 위험은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
AI 학습의 더 근본적인 위험은 질문의 범위에 있습니다. AI와의 문답은 애초에 수요 주도로 기울어요. 사용자가 가진 개념 지도 안에서 질문이 나오고, 그 지도 바깥은 좀처럼 스스로 호명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분야를 체계적으로 알려달라"며 구조 자체를 요청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청한 구조조차 결국 무엇을 청할지 아는 만큼만 넓어집니다.
반면 책과 강의, 커리큘럼은 저자나 전문가가 설계한 구조를 통째로 건넵니다. 물어볼 생각조차 못 한 것들 — 목차엔 있으나 머릿속엔 없는 항목들 — 에 우리는 강제로 노출되죠. 문답에는 이 강제가 없어요. 필터 버블이 알고리즘이 사용자를 바깥에서 가두는 구조라면, 이쪽은 사용자가 자신의 인지적 지평 안에 스스로 머무는 구조입니다. 가둔 사람이 없으니 갇힌 줄도 모르고요. 그만큼 더 교묘합니다.
완결감과 아첨이라는 함정
AI 모델에는 사용자에게 동조하려는 경향, 이른바 아첨(sycophancy)이 있습니다. 질문이 중립적이어도 답변은 사용자의 암묵적 입장을 확인해주는 쪽으로 기울어요.
여기에 완결감의 함정이 더해집니다. 검색은 불완전하게나마 서로 어긋나는 결과들을 늘어놓고 그 어수선함이 뜻하지 않은 노출을 만들어요. 반면 AI는 잘 정돈된 하나의 답을 내놓으며 "이것이 답"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 느낌은 더 찾아볼 이유를 지워버리죠. 탐색이 멈춘 자리에 안주가 들어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AI 시대에 진짜 필요한 능력
진단이 가리키는 처방은 분명합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야말로 위험이에요. 그렇다면 길러야 할 것은 답을 얻는 능력이 아니라 물음을 세우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처방은 시대가 변할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집니다. 한때 어떤 정보는 대학원에 진학해 논문을 번역하고 뒤지거나, 지도교수에게 묻거나, 까다로운 실험으로 데이터를 직접 얻어야 간신히 닿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 대부분이 손쉽게, 그것도 잘 가공되어 펼쳐집니다. 그러나 장벽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겼을 뿐입니다. 정보 획득의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정보 소화의 장벽이 남았어요. 누구나 어떤 사실이든 꺼내올 수 있게 된 시대에 정작 희소해진 능력은, 무엇이 알 만한 가치가 있는지 가려내고 흩어진 사실들을 하나로 꿰는 내부의 골격입니다.
왜 하필 책인가?
그 골격은 자신의 인지적 지평 안에서는 자라지 않아요. 수요가 이끄는 문답은 이미 가진 지도를 확인해줄 뿐, 그 바깥을 그려주지는 못합니다. 골격은 오직 바깥에서, 저자가 설계한 구조를 통째로 통과할 때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런 외부 주도 구조의 가장 밀도 높고 보편적인 형태가 바로 책이에요. 기사나 영상은 단편적이고, AI는 잘 정리된 결론을 곧장 건네줍니다. 오직 책만이 한 명의 저자가 고른 순서를 끝까지 강제하면서, 독자가 결론을 받아쓰는 대신 스스로 사유의 길을 통과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책은 읽는 이에게 아첨하지 않습니다. 비위를 맞추려 결론을 바꾸지 않고, 손쉬운 답이 덜어내 준 씨름과 수고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요구하죠.
격차는 더더욱 벌어진다
책을 읽는 일은 AI를 거부하는 향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예요. AI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려면 먼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아야 하고 그 지도는 읽기로 그려집니다. AI에게 자신의 맹점을 되묻는 영리한 질문조차, 무엇을 모르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던질 수 있어요. 읽기는 AI의 반대편이 아니라, AI라는 도구의 성능을 결정하는 사용자 쪽의 자산입니다.
그래서 AI는 격차를 좁히는 평등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격차를 벌리는 지렛대입니다. 같은 도구를 쥐여줘도 지도가 풍부한 사람은 그것을 한껏 증폭시키고 지도가 빈약한 사람은 자기 지평 안을 맴돌 뿐이에요. 묻는 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격차는, 결국 무엇을 읽었는가의 격차입니다.
진부한 결론에 이르러 미안합니다. 그래도 결론은...
책을 읽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