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마음 지구력
내 안의 '물고기'에 새 이름 붙이기
- #book
얼마 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 지구력" 독후감에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고요? 이해해주세요. 제가 요즘 여러 책을 동시에 읽고 있거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병렬 독서에 맞는 병렬 독후감(?)으로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거 아시나요? 분기학자들에 따르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고기'에 해당하는 생물들은 그 생물학적 특징을 따지고 보면 사실 한 부류로 묶을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이에 따르면 바다에 산다는 이유로 온갖 생물을 '어류'로 묶는 일은, 마치 산에 사는 것들, 멧돼지와 사슴과 곤충, 심지어 산에 거주 중인 사람까지 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범주로 묶는 일과 같죠. 한마디로 어류들은 그저 지금까지 우리의 인지적 편의에 따라 '어류'라는 범주로 묶였을 뿐이라는 겁니다.
사람의 이성은 뭔가를 범주화하려는 본능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꼭 그것이 엄밀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때로는 우리의 편의에 따라 범주의 경계가 그려지고 오류를 범하기도 하죠. 그래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작가 룰루 밀러는 책에서 단어 혹은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 언어로 어떻게 세계에 선을 긋느냐에 따라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틀도 바뀝니다.
'문장'이라는 처방
"마음 지구력"의 주제는 명확합니다. '번아웃'을 다룹니다. 우리말로는 '소진 증후군'이라고 하죠. 책에서는 번아웃의 원인과 원리를 알려줘요. 그러고는 번아웃이 오면 감정을 보살피고 생각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우리가 아무리 번아웃의 원인과 원리를 이해한들, 감정을 보살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한들 '그게 가능하면 이런 책을 읽겠어?' 싶습니다. "마음 지구력"에서는 여기서 '문장'이라는 구체적인 처방을 내놓습니다. "내가 피곤한 상태구나"(숙고), "휴식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야겠다"(준비), "일이 진전된다. 나도 할 수 있어"(실천) 등등 말이에요.
언어는 꽤 강력합니다. 형태와 질서가 없는 생각과 감각을 명확하게 해주죠. 한번 언어로 포획된, 즉 이름이 생긴 생각 또는 감정은 우리의 통제 아래 놓입니다. 때로는 수용할 수 있고 때로는 반박도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물고기'
앞서 말한 범주의 오류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두고도 정말 많은 오류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스로를 향한 자책일 수도 있고, 강박일 수도 있으며, 통제 범위 밖 무언가에 느끼는 불필요한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고통을 주는 오류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런 오류들을 단지 출처가 '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슬며시 수용해버립니다.
어쩌면 그 오류들은 우리 안에 있는 '물고기'가 아닐까요?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저 나도 모르게 인지적 편의 때문에 쉽게 사용하고 있었던, 그러나 정정되어야 하는 이름이자 개념들 말이에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물고기'라는 개념과 이별하려면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끈기 있게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새로운 이름표와 새로운 언어로 무장하여 내 세계의 '물고기'를 깨뜨리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 첫 문장은 이걸로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야."
